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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문화사회학

부호화와 해독

by happier_life 2023. 4. 9.

이미지는 보는 사람들에게 지배적 의미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배적 의미란 이미지의 제작자가 의도했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주로 제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특정 문화적 배경 안에서 대부분의 수용자가 공통적으로 만들어내는 의미를 뜻한다. 모든 이미지는 부호화(encode)되고 해독(decode)된다. 이미지나 사물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부호화되며, 어떤 배경이나 맥락에 놓임으로써 또 한 번 부호화된다. 그리고 수용자가 소비하는 순간 이는 해독된다. 이 모든 과정은 직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예를 덜어 각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작가, 제작자, 제작기관 등에 의해 특정 의미로 부호화되고, 시청자는 자신들의 문화적 전제나 시청 맥락에 따라 이를 해독한다.

홀은 문화적 이미지와 예술 작품을 해독하는 관람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다.

 

1) 지배적-헤게모니적 해독(Dominant-hegemonic reading)

이 입장의 수용자들은 헤게모니적 위치와 동일시된다. 이미지나 텍스트(예를 들어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지배적 메시지를 의심할 여지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2) 교섭적 해독(Negotiated reading)

이미지 및 그 지배적 의미와의 타협과 절충을 통해 해석하는 입장이다.

 

3) 저항적 해독(Oppositional reading)

이 수용자들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이미지 속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위치에 동의하지 않거나 아예 이미지 자체를 기각한다. (예를 들어, 이미지의 존재를 무시한다.)

 

이미지를 지배적 헤게모니에 따라 그대로 해석하는 수용자는 비교적 수동적으로 이미지를 판독한다. 하지만 대개 특정한 경험, 기억, 욕망 등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며 실제로 모든 수용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대중문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를 이러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따라서 두 번쨰와 세 번째 관점에서의 해석이 영상문화를 분석하는 데 더욱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교섭(negotiation)'은 상호교류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교섭은 관람자, 이미지, 그리고 맥락 사이에서 의미를 놓고 벌어지는 흥정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미지를 해석할 때 그 지배적 의미와 '다툼'을 벌인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교섭'이라는 용어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판독하는 과정에는 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개념이 개입되기 마련인데, 이미지 자체뿐만 아니라 그 속의 지배적 의미들은 개별적인 기억, 지식, 문화적 맥락과 함께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속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기각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는 지배적 의미와 능동적으로 투쟁하며, 이를 통해 그 문화적, 개인적 의미를 변형시킨다. 심지어 텍스트의 제작자나 사회가 텍스트에 부가한 의미를 대체하기도 한다. 결국 '교섭'이라는 개념은 문화적 해독이 투쟁의 과정을 겪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투쟁 속에서, 이미지를 해독하는 소비자는 단순한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의미 생산자다.

일례로 여러 나라에서 모방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미국의 유명 텔레비전 퀴즈쇼인 <백만장자 퀴즈쇼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를 생각해 보자. 이 프로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소한 지식과 약간의 행운을 통해 거액을 차지할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프로그램은 욕망과 탐욕의 스펙터클을 제공하며, 제작자는 우리 모두가 거액의 돈을 욕망한다는 의미를 부호화하였다. 이 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퀴즈 게임에서 쉽게 이길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며 돈이 많을수록 행복 지수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높아질 것이라는 지배적-헤게모니적 해독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인기 절정에 있을 때조차, 이 프로그램은 과도한 상업주의와 대중문화의 타락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이 쇼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 상업성을 즐기거나 아니면 현대 문화의 왜곡을 지적하면서 교섭적 해독을 할 수 있다. 또한 사소한 상식이 마치 지식처럼 동일화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자본주의가 누구나 쉽게 성공할 수 있으며 부와 명예를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는 인상을 심어준다는 저항적 해독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퀴즈쇼에서 대부분의 경쟁자는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사회 특권층 구조를 반영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문화는 유동적이며 문화적 재현을 통해서 끊임없이 다양한 요인에 의해 재규정된다.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은 부분적으로는 경제나 자유시장 체제라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상품, 서비스, 자본주의 등의 가치나 의미에 대해 교섭적 해독을 내릴 수 있으며, 아니면 자본주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저항적 해독을 내릴 수도 있다. 이렇게 특정 문화 속에 내포된 이데올로기들은 서로 충돌하면서 긴장감을 형성하며, 상반되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담은 채 끊임없이 해게모니 구조를 재구축하게 된다. 게다가 보는 사람들은 이미지, 사물, 텍스트를 통해 그 의미를 만들어가며 이렇게 형성된 의미조차도 결코 고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미지 속에는 분명히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서로 다른 주관성, 정체성, 경험 등에 따라 절충해 나가는 분석적인 입장은 어느 정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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