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상문화사회학

이데올로기 주체로서의 이미지 해독

by happier_life 2023. 4. 8.

취향은 문화적인 가치나 관심이 자연스럽게 확장되거나 표현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취향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면 우리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특정한 시대적 맥락에 따라 이데올로기로 구체화될 수도 있다.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무엇인가가 특정한 형태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면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띠게 된다. 또한 이데올로기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사고들도 규정한다. 우리의 삶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스며들어 종종 상호 간의 긴장감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가치나 믿음의 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기능 속에 묻혀서 쉽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결과 흔히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보다는 다른 시대의 문화나 이데올로기를 인식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오늘날 이데올로기가 인식되는 방식은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의 역할과 계급 관계 속에서 자본주의의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산업주의와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19세기에 서구 세계를 바라본 마르크스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지배계급이 사회매체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되는 사상을 지배하며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와 문화를 통제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지배계급으로부터 대중 사이로 확산되는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으로 보았으며, 산업자본주의를 번성시키기 위해 권력을 지닌 자로부터 강요되는 개념으로 여겼다. 이후 많은 학자들로부터 논박을 받기도 한 마르크스의 허위의식 개념은 특정한 경제체제, 즉 자본주의에 억압된 계층이 이 체계를 신뢰하도록 만드는 방식들을 강조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과도하게 총체화시키는 개념으로 간주하였고, 이데올로기의 하향적 측면만을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정의에 대해 적어도 2가지의 중요한 도전이 있었으며, 이는 이후 미디어 문화나 시각행위에 대한 이론들로 발전되었다. 그중 하나가 1960년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알튀세르의 이론이었다. 그는 이데올로기는 '개인과 현실 세계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과의 연관성으로부터 분리시켰다. 그에게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의 여부를 떠나 그저 단순히 현실 세계를 반영한다기보다는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결코 현실을 경험하거나 사고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현실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필수 불가결한 표현 수단이 된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경제에서부터 문화에 이르는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재현(represent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시각문화 연구에 중요한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상상적인'이라는 용어로 표현함으로써,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사고나 믿음의 체계로서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이러한 이론은 미디어 연구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부른다(hailed or summoned)'고 표현한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또 그 과정에서 우리를 '작가'로 간주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곧 우리가 주체로 칭해짐을 의미한다. 호명(interpellation)으로 표현되는 이 개념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언어와 이미지로 전달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스스로 구축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미 이데올로기적 화법에 의해 말해지는 주체다.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관람자로서 우리를 호명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관람자는 이미지의 의도대로 지정되는 주체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인간이 늘 호명되는 대상물로 지정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즉 우리가 이미 대상물로 구축되어 있다거나 우리가 누구인지 호명된다면 우리의 삶에서 행위자(agency)를 구하거나 타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 도전하는 또 하나의 이론은 이데올로기를 복수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시도다. 예를 들어, 단일한 대중 이데올로기 개념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도전하거나 저항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알튀세르의 이론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람시는 헤게모니(hegemony)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저항을 설명한 바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주로 저술 활동을 했던 그람시의 사상은 20세기 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헤게모니 개념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주요한 측면을 지닌다. 지배 이데올로기들은 종종 자연스러운 '상식'처럼 다루어진다는 점과 이 지배 이데올로기들은 서로 다른 세력과의 긴장감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특정 계급이 다른 계급에게 휘두르는 권력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계급 구조 속에서 권력이 교섭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지배라는 개념과는 달리, 헤게모니는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단일한 계급도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헤게모니는 사회적 관계들이 교섭되거나 투쟁되는 문화적 상태를 일컫는 셈이다. 따라서 어떠한 집단도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권력은 계급 간의 투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다. 또한 헤게모니의 주요한 측면은 바로 이러한 관계들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데 있기 때문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들은 사회적인 저항의식과 긴장감을 형성하며 늘 문화 속에서 재규정된다. 게다가 이러한 관계는 정치적 운동이나 문화적 요소를 파괴하는 행위 등의 대항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불러오기도 한다. 헤게모니의 개념과 '교섭(negotiation)' 과정은 이렇게 현상에 저항하는 사회적인 변화와 대중의 역할을 보다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상 연구의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대중문화 속에서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미디어 산업과 제작자의 의도를 분석하고 또 이미지 소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영상문화사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유와 저항적 해독  (0) 2023.04.09
부호화와 해독  (0) 2023.04.09
미학과 취향  (1) 2023.04.08
의미의 생산과 해독  (0) 2023.04.06
이미지 도상  (0) 2023.04.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