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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문화사회학

이미지의 의미를 절충하는 방식

by happier_life 2023. 3. 29.

이미지가 관람자나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이미지 속에 내포된 의미는 이미지의 내적 요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소비'되거나 관찰될 때, 혹은 해석될 때 그 의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각 이미지의 의미는 다중성을 지니며, 보는 사람에 따라 매번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이미지를 해석하며 그 의미를 부여하는데, 종종 별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이 시각적 도구들을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미지는 사회적, 미학적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한 이러한 관습은 도로 표지판과 같은 것이어서, 약호(code)를 익혀야만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로 표지판을 바라보면 즉각적으로 지시 사항을 판독할 수 있듯이, 복합적인 이미지를 볼 때 자연스럽게 관습에 의해 의미를 해독하는 셈이다. 횃불이 그려진 그래픽을 접할 때 올림픽을 떠올리듯이 이미 그 약호를 익힌 다음에는 자연스러운 연상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나 상징이나 약호를 의미에 연결짓는 방식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떤 이미지는 흔히 받아들여지는 재현 관습을 역이용함으로써 그 관계의 변화를 잘 드러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연시되어 온 약호와 의미 사이의 연관성이 거의 자의적임을 인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패션 광고에서 여성 모델이 옷을 벗은 채 취하는 전형적인 포즈를 잘 아는 사람이라야 앞쪽의 냅킨 광고를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남성 모델을 여성처럼 포즈를 취하게 하고 냅킨이 '가리는' 것에 대한 농담을 덧붙임으로써, 이 광고는 관심을 유머러스하게 뒤튼다. 이러한 성적 요소의 활용은 잠재적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 회사가 광고적 약호나 상품(냅킨)의 성적 본질을 잘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농담으로 삼을 만큼 세련된 회사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의도되었든 안 되었든 이미지 요소는 의미를 해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러한 단서에는 주로 색, 명도, 색조, 대조, 구성, 채도, 원근감, 스타일링 등의 형식적인 요소도 포함되며, 심슨의 상반신 사진에서처럼 사회문화적 파장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미지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디스플레이되었는지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살인 용의자로서 심슨의 상반신 사진이 잡지나 신문에 실린 경우와 동일한 이미지가 박물관이나 광고 사진에 실린 경우는 그 의미가 확실히 달라진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지를 바라볼 때 성별, 인종, 계층 등의 사회문화적 약호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는 셈이다.

의류 회사인 베네통의 광고 사진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화염에 휩싸인 자동차를 보여줌으로써, 이 광고는 표면적으로는 시각적인 자극을 던져주고 있다. 어두운 배경에 밝은 불꽃을 대비시켜 인상적인 이미지 효과를 만들어내었으며 전체적인 톤은 위협과 긴장감을 나타내고 있다. 마치 다큐멘터리 사진을 연상시키는 이 광고는 카메라를 통해 의도되지 않은 사건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베네통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광고 속에는 사회적이거나 역사적인 요소들이 거의 암시되어 있지 않다. 제목도 설명도 없으며 보는 사람들은 그저 이미지를 통해서만 의미를 해석할 뿐이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배경의 간판이 유럽인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자동차가 만들어진 시기가 1990년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광고 속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만일 1970년대 이전이라면 이 이미지는 사회적인 불안이나 거리의 범죄, 즉 국가나 지역 차원의 쟁점을 상징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이 이미지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테러리즘을 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1990년대 테러리즘의 내포적 의미는 거리 폭력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중첩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 미디어를 접하면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테러리스트 폭력에 대해 우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가 테러리즘을 상징할 때, 이미지의 개별 요소들(광고 안에서 적시되지 않은)의 구체성은 힘을 잃는다. 즉, 사건이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일어났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보다 큰 상징적 의미다. 또한 이 이미지가 광고에 활용되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차원의 함의를 덧붙인다. 이 이미지는 테러리즘 등 세계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베네통이라는 이름, 혹은 베네통 사의 상품에 전이될 수 있도록 의도되었다는 점이다. 베네통 사는 이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현대사회의 문제점과 이슈를 전달하려 했으며, 타 의류 회사와는 달리 베네통은 정치적인 이슈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베네통의 이러한 광고 전략은 의류를 판매하면서도 직접적인 소비의 대상인 일반 대중이 느끼는 현실에도 관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지를 해석하는 과정은 기호학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우리는 매번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주변을 둘러싼 이미지들을 해석한다. 기호학의 원리는 19세기 미국의 철학자 퍼스와 20세기 초 스위스에 언어학자인 소쉬르에 의해 형성되었다. 둘 모두 중요한 이론을 제기하였다. 소쉬르의 저작들은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영상문화의 분석 방식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구조주의 이론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 소쉬르에게 언어는 일종의 체스 게임과 같은 것이다. 관습과 약호에 의해 그 의미가 변화될 수 있으며, 언어와 사물 사이의 관계는 임의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늘 유동적이다. 예를 들어 '개'는 영어로 'dog', 프랑스어로는 'chien', 그리고 독일어로는 'hund'로 표현되는데, 이는 단어와 동물 자체의 관계가 자연적으로 연결된다기보다는 언어적인 관습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소쉬르는 그의 이론을 통해 언어의 규칙이나 관습에 의해 그 의미가 늘 바뀌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퍼스 역시 소쉬르가 <일반 언어학 강의>를 저술하기 이전에 기호학을 소개한 바 있다. 퍼스는 언어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생각을 기호를 해석하는 과정으로 여겼다. 그에 따르면 의미는 처음 기호나 신호를 인식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해석하는 과정과 그 후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연속적인 사고 과정이 있기 전까지는 의미 없는 부호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단 정지라고 쓰인 팔각형의 적색 표지판을 본 후, 이 신호를 해석하고 실제 멈추는 행동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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